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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혈통 구월이 | 글 황응천 스테파노 신부(직장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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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조회 1587


글| 황응천 스테파노 신부 (직장사목부 담당)

사진| 직장사목부 소식지 ‘가톨릭 직장인’       

 

직장사목부 신부들과 아산병원 담당신부가 살고 있는 광장동 '김원영관'에는 4명의 신부들 외에 또 다른 거주자가 마당에서 노숙하고 있다. 사제관 뒷마당의 넓은 부지를 혼자 독점하고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집을 외면하고 눈보라 속에서도 의연하게 땅바닥을 안방삼아 누워있는 녀석(암컷입니다만)이다. ‘김원영관’의 식구, 강아지 ‘구월이’이다.

 

작년 9월 보호소에 개가 한 마리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 몇 시간 만에 입양을 결정했다. 그래서 9월에 왔으니 구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무슨 종(種)인줄도 몰랐다. 그저 진돗개 비슷한 애인데 밥을 많이 먹어서 쫓겨났다기에 이상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밥 못 먹는 한이라도 풀어줄 요량으로 데려 와 버렸다. 마당이 텅 비어 있어서 허전하던 중에 여기 신부들이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때 반가워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진돗개라고 보기에는 주둥이가 너무 길어지고 검은 털이 섞여 올라오는 것이다. 아마도 셰퍼드 혼종이려니 하고 뭐 이런 애가 있나 하던 차에 훈련이고 뭐고 그냥 ‘밥이나 많이 먹으렴’ 하며 신부들은 사랑을 퍼주었다. 교육열(?)을 잃고 나니 솔직히 살도 통통하게 오른 것이 보양식으로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영 꺼림칙하여 이곳저곳에 알아보았다. 그런데 글쎄 이 아이가 벨기에에서는 국견으로 사랑받는 마리노이즈라는 나름 혈통 있는 명견이란다. 어릴 적 많은 어린이들의 가슴에 동물에 대한 사랑을 심어줬던 동화 ‘프란다스의 개’의 주인공인 '파트라슈'가 바로 이 마리노이즈의 한 종류라고 한다.

 

하마터면 동심을 먹어버릴 뻔했다. 그런 혈통의 명견임을 알고나서보니 뒤섞여 나오던 검은 털도 왠지 멋있어 보이고 삐죽이 나와서 보기 싫던 주둥이도 고귀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걸 느낀다. 괜히 누가 ‘무슨 개가 이리 생겼냐’고 핀잔이라도 할라치면 ‘이 녀석이 그 귀한 파트라슈’라고 핏대를 올리며 자랑도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라도 된 양 말이다.

 

누구든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스스로는 깨닫지 못할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다.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다하여 좌절하고, 능력이 부족하다하여 주눅 들고, 눈치 없다하여 외톨이로 홀로 뒤떨어져 죽정이 취급당하며 산다면, 하나의 귀한 희망이 남아있다. 우리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순혈혈통의 귀한 아들딸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 2015년 2월호 ‘가톨릭 직장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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