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희생자 1주기를 맞아 천주교 서울대교구(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는 16일 오후 6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세월호 참사 1주기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는 교구 사제 75명과 신자 1200여명이 참석해 명동성당을 가득 메웠다. 자리가 없어 200여명은 서서 미사를 봉헌해야 했는데도, 모두 미사 내내 자리를 지켰다.

 

서울대교구는 사전에 세월호 유가족을 초청했다. 미사에는 故 박성호 군 모친 정혜숙 씨, 故 이재욱 군 모친 홍영미 씨, 故 박혜선 양 모친 임선미 씨가 참석했다. 명동성당 맨 앞자리에 앉은 이들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았다.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미사 전 교구청 집무실에서 유가족을 따로 만나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미사 참석자들 외에도 故 최성호 군 부친 최경덕 씨, 故 이승환 군 모친 김은숙 씨도 배석했다.

유가족은 염 추기경에게 정부시행령 폐기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위해서 천주교에서 애써주길 간곡히 요청했다.

“저희에게 트라우마 센터 등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유가족들은 정말 뇌를 쪼개는 고통 속에 살고 있어요. 장기가 굳어 밥을 먹어도 소화를 못시키는 가족도 있습니다. 자식이 죽는 걸 눈 뜨고 지켜본 저희입니다. 그렇게 고통 속에 1년을 보냈는데, 저희의 상처를 가중시키는 정책을 보며 분통해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렇게 머리도 밀었어요. 하나라도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故 박성호 군 모친 정혜숙 씨)

이야기를 듣던 염 추기경은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 자리에 배석한 유경촌 주교(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와 허영엽 신부(교구 대변인), 정성환 신부(교구 사회사목국장)도 정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염 추기경은 유가족들을 둘러보며 “여러분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여러분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진행된 ‘세월호 참사 1주기 미사’강론을 통해 염 추기경은 완곡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철저한 원인 규명을 촉구했다.
 

염 추기경은 강론에서“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 있겠나.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과 유가족의 아픔을 하느님께서 끌어안아주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또 “1년 전, 세월호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 배려심, 국가적 자존심도 바다 밑으로 침몰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믿음이라는 가치가 끝없이 침몰했다.”고 전했다.

이어“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회개해야한다”며 “우리 모두의 잘못이란 말이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염 추기경은“정부는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책임자를 가려내어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다. 최근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의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자녀를 졸지에 잃은 부모님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해야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또한“무죄한 이들의 죽음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이 아픔을 기억해야한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 중에는 1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 명동성당을 찾았던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메시지가 봉헌되기도 했다.

기도 메시지는 애도, 위로, 희망, 나눔, 성찰 등 다섯 가지 지향을 두고 신자들이 스스로 작성한 기도내용이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은 세월호 참사 직후 명동대성당 뒤편 성모동산에 ‘메시지벽’을 설치했다. 신자들은 이곳에 직접 자신의 기도내용을 붙이고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사회사목국은 이 메시지 벽 앞에서 희생자를 위한 9일기도와 실종자를 위한 기도회를 진행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명동성당에는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은 유가족이 있었다. 유가족의 뒤로 사제와 수도자, 수많은 평신도가 함께 304명의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추모했다.

영성체 시간, 염 추기경은 제단에서 내려와 유가족에게 성체를 직접 분배하며 다시 한 번 위로의 뜻을 건넸다.

미사 내내 성당 내에 설치된 모니터 상으로 유가족의 모습을 지켜본 신자들은 미사가 끝난 후 유가족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학생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위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뒤 곧바로 유가족에게 다가가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는 아들 또래의 학생에게 응원을 받자 따뜻한 미소와 포옹으로 감사인사를 대신했다.

아들을 잃은 엄마도, 그 엄마를 응원한 학생도, 이들을 지켜본 이들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했다. 모두가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글| 서동경 안나 (홍보국 언론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