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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낮은 자세로 살게 하소서 |이동우 마르코(재즈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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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조회 1459

저는 2004년 봄에 망막색소변성증이란 병을 판정받았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안구의 망막에 일어나는 질환으로 시야가 점점 좁아져 결국엔 실명에 이르는 병입니다.

 

아직 전 세계의 현대과학은 이 병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니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겠지요. 이 병은 난치성 질환임과 동시에 진행성 질환입니다. 따라서 아무런 대책 없이 세월은 흘러갔고 지금 전 실명상태로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상상 이상으로 컸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연예인의 신분으로 살면서 누렸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은 모두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발 앞에 떨어진 동전 한 닢도 줍지 못해 쩔쩔매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저 암담하기만 했고 분노만 치밀었습니다. 

 

무엇보다 억울한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나에게 구체적인 잘못과 과오가 있었다면 그 형벌을 받아들이기가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릅니다.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는 하루하루 다르게 폭군처럼 변해 갔습니다.

 

 

그림| 송안젤라  


그 분노가 극에 달할 때쯤 아내가 병을 얻었습니다. 병원에서 뇌종양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이 잘된다 하더라도 후유증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하늘을 원망할 힘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가장 밑바닥이었던 그곳은 의외로 편안했습니다. 누구를 시기하거나 질투하고 미워하거나 부러워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능력 그 이상의 상황에서 그렇게 저는 한참을 생각했고 오랜 시간 제가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가장 밑바닥이었던 그곳은 의외로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큰 교만과 이기심으로 겁 없고 경우 없이 살아왔는가를… 그 사실을 하나씩 깨닫는 순간 저는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장애인이 된다는 사실보다 지난 과거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습니다.

 

길고 긴 반성의 시간이 지나자 저는 자연스럽게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희망을 갖는 저의 마음은 놀라울 만큼 가볍고 싱싱했습니다.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제 병을 공개했고 그렇게 흰 지팡이를 손에 움켜쥐었고 땅을 향해 힘차게 내리꽂았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공포도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제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습니다. 세상은 저를 응원했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제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주님께서 계시는 낮은 곳이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저는 주님을 뵈었고 느꼈습니다. 주님은 절 안아 주셨고 세상을 향해 다시 돌려세워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또다시 넘어질 수도 있고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갖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겠지요. 늘 부족하고 모자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을 이제는 압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뉘우치고, 받아들일 것을, 그리고 다시 낮은 자세로 임할 것을….
 

글 | 이동우 마르코 (재즈가수)


* 이 글은 2011년2월13일자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란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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