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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진행속도가 더 빠릅니다 |이동우 마르코(재즈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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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조회 1160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난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육 년이 흘렀습니다. 진행성 난치병이라 하루가 다르게 시야는 좁아져 갔고 빛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습니다. 결국 저는 작년에 실명 판정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눈물도 흘렸고 때로는 주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헤어날 수 없는 지독한 공포가 온몸을 뒤덮을 때마다 허겁지겁 술을 들이켰고 그렇게 매번 쓰러져 잠이 들곤 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길고 어두운 터널이었습니다. 언젠가는 터널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하고 스스로 용기를 가져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저에겐 그 용기가 도무지 싱겁기만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터널 밖으로 나간다 해도 나에겐 여전히 어둠뿐일 거란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 허무함은 공포보다 무서웠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듯했습니다. 늘 무기력했고 염세적이었습니다. 제 의식은 언제나 비열했고 사람들에게는 항상 비겁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모습이 주변에서도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처음엔 위로도 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던 사람들도 결국 하나둘씩 멀어져 갔죠. 당시엔 그들이 미웠고 야속했습니다. 인간들은 다 똑같다며 욕하고 침도 뱉었습니다.

 

따뜻하게 안아주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멀어져 갔죠

모든 문제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모든 문제는 저에게 있었음을, 외로움의 그물 안으로 스스로를 몰고 갔던 것이지요. 사회적인 약자가 되었으니 날 보는 모든 사람은 날 배려하고, 위해주어야 한다는 고집을 누구에게나 버리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비춰진 저의 그런 모습은 동정의 대상에서조차 제외되기에 충분했나 봅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요. 다시 일어나 슬슬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건 바로 4살 된 딸 지우였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귀엣말로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커서 의사 돼서 아빠 눈 고쳐줄께요….”
 

 

그림| 송안젤라  

 

저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지우를 향해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온몸이 굳은 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은 등 뒤에서 아빠의 목을 끌어 안아주었고 심지어는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의 눈물까지 닦아주었습니다.


그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나도 멋진 아빠 한번 해보자…’

 

그날 이후 제 병을 세상에 공개했고 머릿속의 모든 세속적 논리와 계산을 지웠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리라 생각했고 마음의 문을 모두 열었습니다. 언제나 가만히

앉아 누군가 나의 손을 잡아주기만을 바랐던 나는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의 일상은 변화하기 시작했고 무서운 속도로 변해갔습니다. 진행성 난치병, 무섭고도 허무한 병이지만 전 이제 웃을 수 있습니다.

 

제 용기와 희망도 그 속도로 진행하고 있으니까요.

 

글 | 이동우 마르코 (재즈가수)


* 이 글은 2011년2월20일자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란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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