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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悔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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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조회 1795

 

   글| 유인창 안사노 신부 (청년성서모임)
그림| 전민선 엘리사벳

 

1994년 1월, 사제서품을 앞두고 저는 30일 대침묵 피정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1시간씩 다섯 번 성경을 묵상하고, 묵상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고, 지도신부님과 면담을 해야 했습니다. 정말이지 먹고 자는 시간 말고는 철저하게 봉쇄수도원의 수도자처럼, 사막의 은둔자처럼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주님의 빛 안에서, 내가 나 자신을 대면(對面)하는 일이 정말로 어렵다는 사실을. 

  

일주일째 이어지는 면담에서 지도신부님은 제가 잘못하고 있다고,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지도신부님을 향해 저는 거꾸로 ‘당신이 저를 잘못 지도하고 있다’고, ‘당신이 제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저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남보다 뒤처지지 않았고, 신학원 규율을 어겨 반성문을 쓴다거나 경고를 받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많은 신자들 앞에서 성직을 수행해야 할 사제가 흠 잡힐 만한 짓을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착실히 살았고 그런 자세로 대침묵 피정에 임하고 있는데, 칭찬을 받기는커녕 도리질을 당하고 있는 게 부당하다고 느꼈습니다. 신학교에서 덜 열심하고, 지금 대침묵 피정에 들어와서도 덜 성실한 동료들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데 왜 나만 붙잡고 못살게 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만과 원망, 조급함과 시기로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묵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갑시다.” 피정 열흘째 되는 날 마주한 지도신부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지체할 수가 없으니까…라니?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는 소리잖아?!’ 무표정한 듯 미소를 짓고 계시는 건지, 아니면 비웃고 계시는 건지 잘 모를 지도신부님의 얼굴을, 차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며 쳐다보았습니다.

“유 부제님, 아담의 죄가 뭐예요?” 지도신부님이 질문을 끝내기가 무섭게, “아담의 죄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라고 대답인 듯 대꾸질을 했습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천사의 죄는 무엇입니까?” ‘??%#@#Σ!?!…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천사가 무슨 죄를 짓는다고…??’ 혼란 반 기막힘 반으로 난감해 하고 있는 저에게 지도신부님은 묵상과 정리 시간을 갖고 다시 한 번 면담을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랜 묵상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저의 답변은 강퍅했습니다. “아담의 죄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고, 천사는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지도신부님이 입을 열어, 느릿느릿 말씀하셨습니다.  “유 부제님… 아담의 죄는 교만이지요. 뱀이 아담을 유혹할 때 그러잖아요. ‘너희가 이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과 같아져서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될 줄아시고…’라고요.”

“…네!? 그러면 천사의 죄는요…?”
엉겁결에 튀어나온 저의 두 번째 물음에 대답하시는 지도신부님은 분명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천사가 교만해지는 순간 악마가 되는 거죠.”

  

자리를 물러나와 다시 경당에 가서 앉았습니다. ‘하느님과 같아져서… 천사가 교만해지면 악마가 된다…’ 멍한 머릿속에서 신부님의 대답이 계속 울리고 있는데, 경당 정면에 걸린 커다란 십자가가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열흘이나 쳐다보았던 십자가인데, 갑자기 달라 보였습니다. 더 크고 무겁게, 더 힘들고 아프게… 더 바라볼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 군인들이 아니라 바로 제가요. 저는 참 교만합니다. 그 교만이 쇠못이 되어 지금도 주님을 아프게 합니다. 주님…’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껍데기가 벗겨진 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상처받고, 일그러지고, 모나고, 가시 돋친… 그리고 그런 흉함을 가리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는…

   

인격과 신앙이 반드시 나이⋅지위⋅경력⋅교육⋅재산과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에 그런 것들이 인격과 신앙의 완성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한 번으로 완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애씀은 필요하고 유효한 것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주님의 은총만이 회심을 가능케 하고, 참된 나를 만날 수 있게 합니다.

 

올여름에도 많은 청년들이 주님의 은총으로 눈물 흘릴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안에서 저 역시 자신의 허물을 더 벗겨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소식지 <말씀의 방> 2015년 6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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