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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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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    조회 1606

           글| 유인창 안사노 신부 (청년성서모임)
        그림| 구가은 발레리아

 

연수를 통해 보여주시는 주님의 은총 앞에 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 하나.

536차 마르코 연수는 공사판(?)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일주일 전 연수원을 찾았을 때만 해도 걱정 가득한 봉사자들에게 충분히 정리가 된다고 호언장담하시던 수사님들은 우리를 사막의 은둔자나 동굴에서 수도하는 영성가쯤으로 과대평가하신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그분들 역시 황망한 마음으로 연수 당일 새벽까지 며칠 동안 청소를 하느라 못 주무셨던 터라 뭐라 원망도 하소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 트렁크에 막대걸레와 진공청소기, 제습기를 실으면서 ‘제게 왜 이러시는데요?’라고 괜히 주님께만 투덜거릴 수밖에…

시작미사에서 연수생들에게 거듭 미안하다 말하고, 연수에 방해가 안 되도록 그리고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혼자서라도 뼈가 부서져라 청소하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공사장 일용직 근무자들처럼 이미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청소하던 차림으로 연수를 시작한 연수봉사자들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습니다.

‘연수지도 신부님, 연수봉사자들, 연수생들은 연수에 집중하게 해야겠다. 청소는 내 몫이다! 나는 오직 그 일만을 위해 들어온 것이다!!’라고 독하게 마음먹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후 진공청소기를 들고 우선 연수생들이 자게 될 방으로 향했습니다. 방문 앞에서 깊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연 순간, 벽과 바닥에 붙어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는 연수봉사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담당신부 혼자 무리할까봐 시작미사 마치자마자 두 명씩 방을 맡아서 저녁식사 전 그룹호명 때까지 청소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순간 울컥했습니다. 담당신부가 못 나서 고생하는 봉사자들이, 원망해도 시원찮을 신부를 위해 피곤한 몸을 움직여 걸레를 잡았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마르코 연수는 너무도 큰 은총 속에 잘 마무리되었고, 저는 연수봉사 후일담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한창 공사 중인 마리스타 교육관에서 깨끗한 걸레를 찾을 수 없었던 연수봉사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들이 가져온 세면수건을 내어놓아 걸레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발을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린 여인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둘.

여름의 무더위는 538차 창세기 연수를 겨냥한 듯 연수기간 내내 맹위를 떨쳤습니다. 자정을 30도로 마치고, 아침을 31도로 시작하는 기온은 연수원을 용광로처럼 달궜고, 연수생들 중 자매들은 집에서도 하지 않았다는 ‘방문 열고 취침’을 감행하면서도 잠을 설쳐야했습니다. 결국 참다못해 셋째 날 밤은 연수생들을 가장 쾌적한(?) 성당에서 자도록 했는데, 사실 연수봉사자들과 상의도 없이 결정한 일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수봉사자들은 연수생들보다 더 바삐 움직인 터에, 마지막 날이라 잠도 포기한 채 그나마 작업하기 용이한 성당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진행을 비롯한 연수봉사자들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러워서 미사를 마치자마자 방에 들어왔는데, 주님의 은총이었는지 그동안의 피곤함이 밀려와서 마침전례도 거른 채 새벽까지 그대로 곯아떨어졌습니다.

웬일로 간만에 호사랄까 비까지 뿌려 상쾌한 새벽 어스름에 잠이 깼습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세수를 하면서도 어젯밤 일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연수생들을 성당에서 재웠을라나? 그렇다면, 봉사자들은…?’ 성당 한 쪽에서 연수생들을 재우고, 다른 한 쪽에서 봉사자들이 작업을 하면 되지 않냐고 전날 내뱉은 무책임한 말을 떠올리며 과연 그랬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금살금 성당으로 가봤습니다. 그 널찍하고 시원한 공간에 평온하게 이불을 덮고 누운 연수생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단잠을 자고 있는 모습에 아빠 마음이 되어 뿌듯한 순간, 또 다른 자식들인 연수봉사자들이 떠올라 먹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올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췌한 모습의 운영부진행이 시작전례를 하고 올라오는 게 보였습니다. 다짜고짜 붙잡고 어젯밤 일을 캐물었습니다.

“연수생들 자는 거 방해될까봐. 저희는 그냥 봉사자 준비방에서 작업했어요.”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이 잔뜩 물먹은 스펀지가 되었습니다. 몇 안 되는 연수생들을 재우려고, 봉사자 전체가 불편을 감수한 채 그 퀴퀴하고 눅눅한 준비모임방에서 밤을 샜을 생각을 하니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파견미사 중에 1독서를 하는 자매님이 성경을 봉독하다 말고 울음이 터져 나와 쉽게 이어가지 못 했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이었습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이사 55,1-3) 주님의 말씀이 살아 숨 쉬고 계시는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의 눈에서 따뜻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차수에서 아름다운 청춘들이 만들어내는 감동과 행복의 순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놀라운 모습 앞에서 말을 잃습니다. 그런 제 입을 통해 의도치 않은, 이런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시편 8,1.4. 공동번역)

 

※ 서울대교구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소식지 <말씀의 방> 2014년 9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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