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사제들이 전하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나를 일으켜 세운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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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7    조회 1636

 

 

 

 

 



글| 박민서 베네딕토 신부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담당)

그림| 구가은 발레리아                                             

 

저는 사제품을 받은 후 청각 장애인을 위한 특수사목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서울대교구엔 아직 청각 장애인을 위한 성당이 없기 때문에 특수사목을 하는 공동사제관 에서 십여 명의 사제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청각 장애인인 제게 공동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니 사제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도, 쉽게 친분을 맺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에 단절을 당한 사람’이라고 헬렌 켈러는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그 말을 몸으로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니 소외감이 깊어지고, 저는 궁금한 일이 생겨도 사제들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저를 사제들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하고, 저만의 동굴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결국 저는 교구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동굴 속에서 헤매고 있을 즈음, 교구 사제 연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연수 때 수화를 할 줄 아는 한 신부님이 통역을 잘 해주어서 모든 사제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저를 처음 만난 한 선배 신부님이 “박 신부! 사제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야 해. 박 신부가 듣지 못하는 장애가 있다고 해서 혼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돼. 박 신부는 우리 교구 사제니까 함께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말해. 응원해줄 테니, 힘내!”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의 동굴에 빛이 들어오는 듯했고, 동굴에서 나와 그분들과 함께 목자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연수 동 안 사제들은 비록 의사소통이 안 되더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고 저와 함께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사제들이 축구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며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한 선배 신부님 이 같이하자며 손짓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신발이 조금 불편했지만 저를 불러준 것이 고마워서 축구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함께한다는 기쁨에 발이 아파도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축구를 잘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뛰는 모습에 기뻐했고, 저는 신부님들과 시합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축구를 함께 했던 선배 신부님이 제게 축구화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선물에 담긴 선배 신부님의 관심과 사랑에 너무 감사했고, 주님께서 불러주신 사제들의 공동체 속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박 신부! 우리 교구 사제니까 함께 해.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 응원해줄 테니, 힘내!” 선배 신부님의 이 말씀 은 소외감 속에 주저앉아 있던 저를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하느님은 물론이고, 저를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행복합니다. 
 

* 2015년 12월 27일자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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