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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낮은 자세로 살게 하소서 |이동우 마르코(재즈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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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조회 4180

저는 2004년 봄에 망막색소변성증이란 병을 판정받았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안구의 망막에 일어나는 질환으로 시야가 점점 좁아져 결국엔 실명에 이르는 병입니다.

 

아직 전 세계의 현대과학은 이 병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니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겠지요. 이 병은 난치성 질환임과 동시에 진행성 질환입니다. 따라서 아무런 대책 없이 세월은 흘러갔고 지금 전 실명상태로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상상 이상으로 컸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연예인의 신분으로 살면서 누렸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은 모두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발 앞에 떨어진 동전 한 닢도 줍지 못해 쩔쩔매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저 암담하기만 했고 분노만 치밀었습니다. 

 

무엇보다 억울한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나에게 구체적인 잘못과 과오가 있었다면 그 형벌을 받아들이기가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릅니다.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는 하루하루 다르게 폭군처럼 변해 갔습니다.

 

 

그림| 송안젤라  


그 분노가 극에 달할 때쯤 아내가 병을 얻었습니다. 병원에서 뇌종양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이 잘된다 하더라도 후유증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하늘을 원망할 힘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가장 밑바닥이었던 그곳은 의외로 편안했습니다. 누구를 시기하거나 질투하고 미워하거나 부러워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능력 그 이상의 상황에서 그렇게 저는 한참을 생각했고 오랜 시간 제가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가장 밑바닥이었던 그곳은 의외로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큰 교만과 이기심으로 겁 없고 경우 없이 살아왔는가를… 그 사실을 하나씩 깨닫는 순간 저는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장애인이 된다는 사실보다 지난 과거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습니다.

 

길고 긴 반성의 시간이 지나자 저는 자연스럽게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희망을 갖는 저의 마음은 놀라울 만큼 가볍고 싱싱했습니다.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제 병을 공개했고 그렇게 흰 지팡이를 손에 움켜쥐었고 땅을 향해 힘차게 내리꽂았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공포도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제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습니다. 세상은 저를 응원했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제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주님께서 계시는 낮은 곳이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저는 주님을 뵈었고 느꼈습니다. 주님은 절 안아 주셨고 세상을 향해 다시 돌려세워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또다시 넘어질 수도 있고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갖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겠지요. 늘 부족하고 모자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을 이제는 압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뉘우치고, 받아들일 것을, 그리고 다시 낮은 자세로 임할 것을….
 

글 | 이동우 마르코 (재즈가수)


* 이 글은 2011년2월13일자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란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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