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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신부의 ‘우리시대 교황님들’] (3-上) 착한 교황- 요한 23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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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6    조회 1721
로마 시내를 활보하던 교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는 항상 ‘파격’이란 수식어가 뒤따릅니다. 그런데 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역대 교황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교황주일을 맞아 역대 교황들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손희송 신부의 강의록을 요약하여 전합니다.
본 내용은 지난 6월 19일 교구 성소국이 주최한 본당 성소후원회 임원연수의 일부입니다.
좋은 내용을 전해주신 손 신부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요한 23세 교황.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두가 ‘과도기적 인물’로 생각해

요한 23세, “지상에서 우리 모두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

 
교황 요한 23세(안젤로 론칼리)는 1958년 10월 28일에 77세의 연로한 나이로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출됩니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 지방의 산골마을 소토 일 몬테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런 출신 배경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나는 가난하지만, 겸손한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가난한 서민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론칼리는 1904년 사제가 된 후에 베르가모 교구장 비서, 신학교 교수(교회사와 교부학)를 역임하다가, 1934년에는 그리스와 터키 교황대사로 임명됩니다. 터키와 그리스에서는 터키 정부 각료들과 동방 교회 지도자들과 돈독한 우호 관계를 맺습니다. 1944년 12월에는 프랑스 교황대사로 임명을 받아 전후에 국가와 교회 간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합니다. 1953년 베네치아 교구장으로 임명받아 사목생활을 하다가 261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전임 교황 비오 12세가 20년간 강력한 통치를 해 왔기 때문에 추기경단은 그렇게 장기간 교황 자리에 있지 않고 또 강력한 통치를 하지 않을 후임자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로한 요한 23세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방향이 설정될 때까지 숨고르기 시간을 위한 과도기적 인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그런 평가를 들은 교황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이 지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요한 23세를 ‘별 볼일 없는’ 과도기적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를 ‘별처럼 빛나는’ 과도기적 인물로 만드셨습니다. 한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그런 인물로 만드신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활약하였던 벨기에 브뤼셀 교구의 레온 수에넨스 추기경은 요한 23세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역사의 관점에서 보년 그분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경계의 말뚝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게 하신 하느님(이사 11,1)은 연로한 ‘과도기’의 교황을 통해 교회에 새로운 시작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

군주적 교황 아닌 목자가 되길 바라

바티칸 밖으로 나가 로마 시내 찾아

“여러분이 올 수 없어 내가 왔습니다”



요한 23세는 전임자와 같은 군주적 교황이 아니라 목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선출 직후에 추기경 단장에게 “나는 화려함에 둘러싸여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목자가 되기를 원한 요한 23세는 전임자들처럼 바티칸에 머물기 보다는 로마 시내로 나가 스스럼없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교황으로 선출된 1958년 성탄절에는 예고 없이 아동 병원을 방문하였다. 이튿날은 로마의 교도소에 수용된 1,200명의 죄수를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교황모를 벗어 들면서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내게 올 수 없어서 제가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로마 교구의 본당들을 방문하여 미사를 지냈습니다.

 


△ 성탄절 다음날 로마의 교도소를 찾은 요한 23세 교황은 교황모를 벗으며 1,200명의 죄수들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여러분들이 내게 올 수 없어서 제가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요한 23세는 교회 쇄신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던 분입니다. 교황 선출 다음 날에 교황의 발에 입 맞추는 관습을 중단시켰고, 무릎을 꿇고 교황에게 분향하는 것도 그만두게 했습니다. 또한 교황 알현 때 세 번 무릎 꿇어 인사하는 것도 면제 시켰습니다. 하지만 교황은 전통을 존중했기 때문에 화려한 교황 복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서두르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모두가 그리스도에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이를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도한 관습은 중단시키는 한편, 전통 중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으로 교회 쇄신 앞당겨


교회 쇄신을 위한 교황 요한 23세의 최대의 업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집이었습니다. 그는 교황이 되면서부터 ‘교회가 현대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본연의 소명에 더 충실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그 해답을 공의회에서 찾았습니다. 1959년 1월 25일, ‘성 바오로 개종 축일’에 성 바오로 성당을 방문했을 때 보편 공의회 소집을 공표합니다.

공의회 소집에 대해 세상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지만 교황청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의회는 교회 내적 혹은 외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주교들이 로마에 운집하게 되면 온갖 기대와 꿈, 호기심과 소원을 풀어놓고 의견과 요청, 비판이 쏟아져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에 로마 교황청 내의 일부 인사들은 교황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소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하지만 요한 23세의 확고한 의지에 힘입어서 1962년 10월 11일 세계 각처에서 온 2,540명의 주교들이 모인 가운데 제21차 보편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었습니다.

 

<3편 下에 계속>

글| 손희송 신부(교구 사목국장)
정리| 서동경 안나(홍보국 언론홍보팀)
 

<<<연관기사>>> 
 

▶ 1편/선출 직후 신자들에게 머리를 숙였던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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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추기경단 국제화를 시작하고, 대한민국을 최초로 주권국가로 인정한 <비오 12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1 , http://newsseoul.catholic.or.kr/?i=172

 

▶ 3편/교회 쇄신을 일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기수, 바티칸 바깥 나들이에 자주 나선 <요한 23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4 , http://newsseoul.catholic.or.kr/?i=173

  

▶ 4편/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순교자, 한국 최초의 추기경을 탄생시킨 <바오로 6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5

 

▶ 5편/선출 직후 따뜻한 미소를 보낸 ‘종들의 종’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6



▶ 6편/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한 “하느님의 육상선수” <요한바오로 2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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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편/교회의 세속주의와 맞선 후 미련 없이 교황직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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