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요셉 라칭거)는 1927년에 가톨릭 전통이 강한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51년에 사제가 되고 1953년에 박사학위를 취득 한 후에 프라이징 교구 신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합니다. 1959년 독일 북부 본(Bonn) 대학교 정교수가 된다. 1963년에는 독일의 뮌스터 대학교로 옮겨갔다가 1966년에 튀빙겐 대학교로 초빙을 받아 교의 신학을 강의하였다. 그곳에서 1968년 출간한 저서『그리스도교 신앙, 어제와 오늘』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라칭거가 튀빙겐에서 머물렀던 1967년과 1968년에는 네오마르크시즘 열풍, 즉 극렬 좌파 학생운동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독일 대학가에 불어 닥친 이 열품으로 진보적 성향이 있는 신학 교수들마저 학생들에게 강의 마이크를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자 라칭거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 여파로 1969년에 튀빙겐 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좀 더 전통적이고 가톨릭적인 분위기의 레겐스부르크 대학교로 옮겨가서 신학교수와 부총장을 역임합니다.

라칭거 자신은 대학 교수가 제일 맞은 자리라고 생각하였지만, 1977년에 교황 바오로 6세가 그를 독일 뮌헨 대교구장으로, 곧 이어서 추기경으로 임명합니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합니다.

라칭거 추기경은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요한 바오로 2세를 보좌하면서 ‘진리의 수호자’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때문에 ‘장갑차 추기경’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직무 가운데 유쾌하지 않은 임무들은 상당 부분”은 자신이 떠맡아야 한다는 각오로 가톨릭 교의와 전통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사상과 신학적 조류와는 정면대결을 불사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해방신학과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신앙교리성은 1984년과 1986년에 발표된 두 개의 훈령을 통해서 해방신학의 원래 핵심, 즉 신앙으로 가난한 이들에 헌신함을 옹호하는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비판하였습니다. 해방신학의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원용함으로써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대의를 저버리는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이 문헌이 발표되자 라칭거 추기경은 해방신학 옹호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라칭거 추기경은 2005년 4월 19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그는 자신이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명을 택한 이유를 4월 25일 일반 알현 중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의 시기에 전쟁의 비극을 막고 전쟁에 따른 불행한 결말들을 줄이고자 노력했던 교황 베네딕토 15세를 본받아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이 이름을 택했습니다. 또한 서방 수도원의 아버지이며 유럽의 수호성인인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성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성인께 우리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확고히 모시고 살아가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동방 가톨릭 총대주교들도 참석한 간소한 취임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미사 강론에서 “나의 진정한 통치는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며, 내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주님의 말씀과 뜻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인도를 받아 인류 역사 안에서 그분 자신이 교회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특히 현대 사회를 ‘사막’으로 비유하며, “오늘날 세상에는 가난과 굶주림, 자포자기와 소외, 파괴된 사랑, 공허한 영혼, 인간 생명의 존엄성 상실 등 수많은 사막이 존재한다.”라며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을 사막에서 이끌어내 풍성한 생명을 선사하시는 성자께 인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전임자 요한 바오로 2세처럼 대중친화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임기 초반에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는 전임자의 유업을 단절 없이 이어갔습니다. 아시아를 제외한 4대륙을 순방하였고, 그리스도교의 일치, 종교 간 대화, 특히 유대교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세계 평화와 사회 정의 문제에는 분명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유럽이 정정불안을 피해 도망쳐 온 수만 명의 이민자와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2009년에 교황은 서방 선진국들에 난민을 수용할 의무가 있다고 촉구했습니다. 또한 2010년 12월 31일에는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 금융 감독기구를 신설하고, 돈 세탁과 테러 자금 유입 방지를 위해 국제 규정에 부합하는 새 법률을 만드는 포고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표명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 그리고 기후 변화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인류 가족 전체를 위한 중대한 관심사”라고 말하고, “어떠한 국가나 기업도 모든 경제 사회적 발전에 있는 윤리적 합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임기 중에 자주 (대부분 편견과 악의로 인한) 비난에 직면하였습니다. 일례로 2006년 9월 독일 방문 때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신앙, 이성 그리고 대학 -회상과 반성’이란 제목으로 학술 강연을 하였는데, 이슬람과 폭력에 대해 인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학술 강연을 위한 인용이 정치적인 시각에서 문맥을 무시한 채 단편적으로 보도되자 이슬람 세계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그해 11월 말에 예정된 터키 사목 방문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터기 방문은 계획대로 이루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해가 풀려서 오히려 이슬람 쪽에서 진지한 성찰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상 이슬람에서도 일부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10년에는 사제들이 과거에 저지른 아동 성추행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터져 나와 엄청난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사실 교황은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할 때부터 사제들의 아동 성추문에 대한 철저한 조치를 지시하였습니다.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성 추문 사건이 알려지자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교황은 곧바로 이런 사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함 지침을 공포하였고, 2003년에는 그 지침을 다시 강화했습니다.

교황이 된 후에는 2006년 10월에 아일랜드 주교들에게 성추문과 관련된 진실을 밝히고 그와 같은 끔찍한 범죄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하고, 법과 정의의 원칙들을 존중하고, 또 무엇보다 희생자들을 보살펴 치료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교황은 기회가 있을 때만다 성 추문 문제에 대해 언급했지만, 서구의 매스컴들은 계속 ‘성추행 사태에 침묵하는 교황’이라고 비난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재임 중에 교회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풍랑에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와 싸웠다면, 그는 세속주의 및 도덕적 상대주의와 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무기는 뛰어난 지적 능력과 도덕적 강인함, 그리고 날카로운 논변이었습니다. 그는 서구 세계의 세속화와 신앙 상실을 자주 언급하면서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오늘날 서구에서 확산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쇠퇴와 세속화의 풍조를 막으려면 먼저 기본적인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놓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스스로 지닌 보물을 알아차리도록 힘써야 하고요. 그런 다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의 힘으로 세속주의와 맞서고 신앙과 세속을 제대로 가려야 합니다. 이 과정이야 말로 오늘날 진정으로 위대한 과업입니다.”

교황이 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 지속되는 ‘신앙의 해’를 선포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결정일 것입니다. 
  

598년만에 교황직 사임한 교황

“하느님 앞에서 양심 성찰해”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11일 추기경 회의에서 2월 28일 오후 8시를 기해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합니다. 그는 사임 발표문에서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성찰하면서 ‘급변하는 세상’,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몸과 마음의 힘’이 없다고 확신하고, ‘온전한 자유’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밝혔습니다. 살아있으면서 교황직을 사임한 경우는 교황 그레고리오 12세(1406-1415) 이후 598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2월 28일 늦은 오후에 교황은 바티칸을 떠나 임시 숙소인 카스텔 간돌포로 향했습니다. 거기에 모인 군중에게 “저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례를 시작하는 소박한 순례자일 뿐”이라면서 “저의 온 마음, 사랑과 기도, 묵상과 성찰, 나의 모든 내적 힘을 다해서, 저는 여전히 교회와 인류의 선익과 공동선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진가는 시간이 지나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의적으로 교황직에서 물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결단은 교회사에 매우 중요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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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희송 신부(교구 사목국장)
정리| 서동경 안나(홍보국 언론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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