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카롤 보이티야)는 1920년 폴란드의 공업도시 바도비체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육군 대위로 제대한 후 연금 생활을 했는데, 카롤이 9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성실한 신앙인이었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합니다. 김나지움(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에 열정을 쏟았고 대학에 진학해서 폴란드 문학을 전공하면서 계속 연극 활동을 하였습니다.

1939년 9월에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대학을 강제로 폐쇄하자 카롤은 채석장과 솔베이 화학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연명합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친구들과 지하 연극 동아리를 조직해서 활동할 정도로 연극에 몰두하였습니다. 연극 활동은 폴란드 문화를 말살하려는 나치 정책에 대한 항거이기에 목숨을 위협받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카롤은 나치의 잔혹한 통치 하에 신음하는 조국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는 마음에서 연극과 문학에 열중하였던 것 같습니다. 1941년 2월 유일한 가족으로 남아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숙고를 거듭한 끝에 사제가 되고자 1942년 겨울 크라쿠프의 지하 신학교에 입학합니다.

1945년 1월 폴란드는 나치 지하에서 벗어나지만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크라쿠프 교구장은 교회가 앞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준비된 사제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카롤 보이티야를 앞당겨 서품하고 곧바로 로마로 보내 신학 박사 과정을 밟게 합니다. 카롤은 1946년 11월 1일에 사제가 되어 로마로 유학을 떠나 1948년 6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합니다.

귀국 후에는 시골 본당 보좌, 크라쿠프 근처의 본당 주임 신부(청소년과 청년 교육에 투신), 크라쿠프 신학교와 루블린 가톨릭 대학교에서 윤리신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1958년 7월 크라쿠프 교구 보좌주교로, 1963년에는 크라쿠프의 대주교로, 1967년에는 추기경으로 임명됩니다. 보이티야 추기경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교구장 비진스키 추기경과 협력하여 폴란드 공산주의 정권으로부터 교회의 합법적인 지위를 확보하고자 많은 노력하여 대체로 좋은 성과를 거둡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 네 번 회기에 모두 참석하여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공의회 이후에는 공의회의 결정 사항을 실행하는 데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세계 도처의 교회를 방문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친숙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1976년에는 바오로 6세의 초청으로 교황과 교황청 인사들의 사순절 피정을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보이티야 추기경은 1978년 9월 교황 선거에서 58세의 비교의 젊은 나이로 264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456년 만의 비 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첫 등장부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교황 선출 직후 전 첫 축복을 주기 전에 간단한 인사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먼 곳에서 왔다고 하면서 “우리는 신앙과 그리스도교적 전통 안에서의 공동체를 통해 항상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고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는 여러분들께 여러분 나라의 말로, 아니 여러분과 나의 말인 우리의 말로 인사하고자 합니다. 내가 말하는 도중에 실수하면 여러분께서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행한 이 짧은 인사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얻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보이티야는 전임자의 이름을 이어받아 요한 바오로 2세를 교황명으로 삼고, 전임자처럼 화려한 즉위식 대신에 베드로 광장에서 소박한 취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는 교황이 되기 전부터 이미 탁월한 학식과 예술적인 재능을 겸비했을 뿐더러 운동 실력까지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27년간 교황으로 재위하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출신 교황으로서 조국 폴란드에서 공산정권을 몸소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분명하고 인지하면서 공산주의에 완강한 반대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교회의 길은 인간이며, 인간의 길은 그리스도’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메시지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이 된 다음 해인 1979년 폴란드를 연달아 방문하여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 노조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폴란드뿐만 아니라 동구권 민주화게 큰 도움이 되어 공산주의 몰락을 가속화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1981년 5월 13일에 요한 바오로 1세는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알현 중에 터키인의 총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배후는 아직 밝혀진 바는 없지만,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소련의 사주로 일어난 사건으로 추정됩니다. 다행히 요한 바오로 2세는 1년 후에 건강을 회복하고 계속 왕성하게 활동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던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접견하여 냉전 종식에 힘을 실어주어 주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산주의 독재를 단호하게 거부하였지만,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서방 세계가 과도한 물질 만능주의 풍토 때문에 도덕과 신앙심이 타락하는 점도 비판했던 것입니다. 그는 측근에게 “내 몸 안에는 분명히 공산주의에 대한 항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사회와 그 모든 비극을 생각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체제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처럼 다른 그리스도교파의 일치,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을 위한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의 아픔을 겪은 바 있는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당사국인 영국과 아르헨티나를 동시에 방문해서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1983년 내란으로 분열된 중앙아메리카를 방문해 비폭력적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기를 촉구했고, 두 차례의 걸프전에 심각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과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교황 무류권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부 ‘해방신학’ 등 가톨릭 교회에 ‘용인될 수 없는 견해’를 지닌 신학자들의 교수 자격을 박탈하였습니다. 윤리 문제에서는 세속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확고한 태도를 고수하였습니다.

그는 생명의 가치와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동성애와 낙태, 안락사, 인공 피임, 인간 복제, 사형제도 등을 “하느님의 의도와 자연법칙을 어기는 행위”라며 죄악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교회의 전통적 가치관을 옹호하였습니다. 성직자의 결혼 허용과 여성의 사제 서품을 단호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여성사제 서품은 바오로 6세도 1976년 문헌을 발표해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

교황이 신앙과 윤리 문제에 대해 엄격하게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한 데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흔들리기 시작한 교회의 가르침과 결정을 다시 확고하게 지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추정됩니다. 신앙과 윤리 문제에 대한 그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입장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한 서유럽에서는 반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1985년 5월 네덜란드 방문 때에는 그곳의 진보적 가톨릭 신자들에게 냉랭하고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2000년 3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회상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같은 해 3월 12일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에 대한 이단 심문, 십자군 원정, 유다인에 대한 차별, 다른 종교와의 반목, 여성에 대한 억압, 그리스도교의 분열 등 교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일일이 거론하면서 그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위 기간 동안 거의 매해 해외 순방에 나섬으로써 교황직의 세계 선교사적 면모가 강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1979년 1월 멕시코를 방문해서 푸에블라에서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총 104번의 사목 방문을 하여 5개 대륙을 190만 킬로미터 넘게 다녔습니다. 방문 때마다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엄청난 군중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도전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 행사를 위해, 1989년에는 세계 성체대회 폐막 미사 집전을 위해 두 번 방한하였습니다. 그는 연극배우 출신으로서의 재능, 다양한 언어구사 능력, 대중 친화력, 유머 감각으로 군중의 마음을 휘어잡았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하느님의 육상선수’, ‘행동하는 교황’이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건강 체질이었습니다. 하지만 1996년부터 파킨슨병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으로 왼손을 떨며 왼쪽 얼굴 근육이 경직되는 증상 외에도 만성적인 무릎 관절염을 앓으며 급격히 허약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건강상 많은 어려움 때문에 교황직을 사임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무성하였습니다. 실제로 사후에 공개된 유언장에는 교황직을 사임할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2005년 4월 2일 선종할 때까지 교황직에 머물렀습니다.

<7편 베네딕토 16세에 계속>

글| 손희송 신부(교구 사목국장)
정리| 서동경 안나(홍보국 언론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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