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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신부의 ‘우리시대 교황님들’] (5) 미소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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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6    조회 2063
자신을 낮추며 기도를 청하던 교황
33일의 짧은 재위기간, ‘종들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는 항상 ‘파격’이란 수식어가 뒤따릅니다. 그런데 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역대 교황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교황주일을 맞아 역대 교황들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손희송 신부의 강의록을 요약하여 전합니다.
본 내용은 지난 6월 19일 교구 성소국이 주최한 본당 성소후원회 임원연수의 일부입니다.
좋은 내용을 전해주신 손 신부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겸손의 주교, 미소의 교황으로…

 

바오로 6세의 후임은 요한 바오로 1세(알비노 루치아니)입니다. 그는 1912년 이탈리아 벨루노 교구 포르노디 카날레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35년 사제로 서품되고 1958년에 주교로 임명되는데, 사목 표어는 ‘겸손(Humilitas)’이었습니다. 주교가 되고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모든 회기에 참석하였습니다. 1969년 12월 15일에는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임명되고 1973년에는 추기경이 됩니다.

그는 성당의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을 싫어했고, 값비싼 성작이나 교회의 귀중품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돕도록 본당 신부들에게 권장했습니다. 1971년에는 서방의 부유한 교회들은 수입의 1 퍼센트를 제3세계의 가난한 교회를 돕는 데 써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 바오로 6세와 훗날 그의 후임이 된 요한바오로 1세 교황의 추기경 시절 모습. 바오로 6세는 선종하기 몇 달 전 자신의 교황 전용 영대를 벗어 그에게 걸어주었다.

 

 

바오로 6세는 선종하기 몇 달 전에 베네치아를 방문하였을 때 자신의 교황 전용 영대를 벗어 루치아니 추기경의 어깨에 걸어주었습니다. 바오로 6세는 루치아니 추기경이 자신의 후임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 원의가 이루어져 1978년 8월 26알 루치아니는 바오로 6세의 후임으로 선출됩니다. 그의 교황 선출은 추기경 대다수가 교황청 기구와 관련 없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교황을 원했음을 드러냅니다. 루치아니는 이탈리아 밖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후보자’로 환영받았습니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군중에게 첫 강복을 줄 때 친근한 미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미소 교황’으로 ‘하느님의 미소’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한 23세의 선함과 바오로 6세의 엄격함을 따르려던 교황

역사상 최초로 이중 이름 선택

 

루치아니 추기경은 자신의 교황 이름으로 교회 역사상 최초로 이중 이름인 ‘요한 바오로’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선임 교황들의 이름 두 개를 모두 선택함으로써 요한 23세의 선함과 바오로 6세의 엄격함을 모방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교황 선출 다음 날인 8월 27일에 행한 ‘희망의 서광이 누리를 비춥니다.’라는 제목의 첫 라디오 메시지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은 “요한 23세의 크신 마음으로 다져진 노선에 따라서 바오로 6세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계속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자신이 어떻게 교황직을 수행할 것인지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 계획이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유산을 계속적으로 수행하고 공의회의 규범의 준수와 실천하되 그 내용과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전달하는 것,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지속적으로 교회 쇄신을 추진하는 것, 바오로 6세의 노선에 따라 복음 선교를 첫째 임무로 삼고, 교회 일치 운동을 지속하며, 온화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 세계 평화의 수호와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교황 대관식을 생략하고 팔리움 수여미사로 대체

“‘종들의 종이 쓰기엔 너무 무겁다”

 

9월 3일 그는 허세와 허례허식을 철저히 배격하여 6시간이 걸리는 화려한 전통적 교황 대관식을 생략하고 삼층관이 아니라 팔리움을 받는 것으로 교황직을 시작합니다.

교황의 삼층관은 교황의 세속적, 교회적, 천상적 세 권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추기경 단장은 새 교황에게 삼층관을 씌우면 이렇게 말합니다. “세 개의 관으로 장식된 이 교황관을 쓰는 당신은 군주들과 왕들의 아버지이고, 세상의 안내자이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아시오.”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황관이 “’종들의 종’이 쓰기에는 너무 무겁다.”고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교황 전용 가마의 사용도 거절했지만, 바티칸 당국은 그에게 신자들이 멀리서나마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으려면 가마의 사용이 필요하다며 그를 설득하였습니다.

 

다스리기 위한 교황직이 아닌 섬기기 위한 교황직

자신을 낮추며 자주 자신을 위한 기도 청해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황직을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라고 이해하면서 자신의 연설을 담은 공식 문서를 통해, 교황 스스로 ‘우리’(we, 왕조시대에 왕이 자신을 ‘짐’이라고 한 것과 비슷함)라고 부르던 관례를 깨고 ‘나(I)’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춘 요한 바오로 1세는 자주 자신을 위해 기도를 청하였습니다.

교황 선출 다음 날인 8월 27일 삼종기도 담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요한 교황님의 ‘마음의 지혜’도, 바오로 교황님의 자질과 학식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어른들의 자리에 서게 되었으니 교회에 봉사할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기도로 나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교황직무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9월 3일에는 그날 기념하는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 저서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태까지 착한 목자란 이런 사람이라고 묘사했지만 나 자신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사람이 도달해야 할 완덕의 피안을 보여주었지만, 나 자신은 아직도 결점과 과오의 파도에 까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가 빠져 죽지 않게 기도로 구원의 판자조각을 제게 던져 주십시오.” 덧붙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황은 물론이려니와 온 세상이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 ‘세계가 잘못되어 가는 까닭은 기도보다 전쟁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쟁보다 기도에 힘쓰도록 합시다.”

△ 요한바오로1세는 교황직을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 믿었다. 늘 자신을 낮추던 교황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자주 요청했다. 사진은 일반 알현 중 어린이에게 마이크를 넘겨주며 온화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요한바오로 1세의 모습.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아쉽게도 33일 동안 교황으로 재위하다가 9월 29일 밤 심장마비로 선종하였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교회와 세상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억측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바티칸 은행을 정리하고 교황청 유력 인사들을 교체하려는 계획을 세웠기에 독살되었다는 추측이 난무하였지만,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1세는 자신의 이른 죽음을 예견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개인 비서였던 몬시뇰 마기는 교황이 건강이 너무 나빠 오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로 측근에게 암시한 바 있다고 회고했습니다. 또한 선종 전날에 요한 바오로 1세가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흉부 통증을 호소하면서 곁에 있던 수녀에게 평소 복용하던 알약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요한 바오로 1세는 생전에 자신이 교황이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폴란드 출신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을 적격 인물로 꼽았다고 합니다. 요한 바오로 1세는 개인 비서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하필이면 왜 나란 말인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추기경(카롤 보이티야)처럼 다른 좋은 후보들이 많은데,”

친근한 미소로 사람들을 마음을 사로잡았던 요한 바오로 1세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자 많은 이들이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을 했습니다. 소박하고 겸손하면서도 사목적이었던 그가 오랫동안 살았다면 교회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는 2003년 11월 2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시성 심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될 때 붙여지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었습니다.

<6편 요한 바오로 2세에 계속>

글| 손희송 신부(교구 사목국장)
정리| 서동경 안나(홍보국 언론홍보팀)
 

<<<연관기사>>> 
 

▶ 1편/선출 직후 신자들에게 머리를 숙였던 <프란치스코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0

 

▶ 2편/추기경단 국제화를 시작하고, 대한민국을 최초로 주권국가로 인정한 <비오 12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1 , http://newsseoul.catholic.or.kr/?i=172

 

▶ 3편/교회 쇄신을 일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기수, 바티칸 바깥 나들이에 자주 나선 <요한 23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4 , http://newsseoul.catholic.or.kr/?i=173

  

▶ 4편/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순교자, 한국 최초의 추기경을 탄생시킨 <바오로 6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5

   
▶ 6편/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한 “하느님의 육상선수” <요한바오로 2세 교황>

    ☞http://newsseoul.catholic.or.kr/?i=177

 

▶ 7편/교회의 세속주의와 맞선 후 미련 없이 교황직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 http://newsseoul.catholic.or.kr/?i=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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